IR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드디어 IR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IR을 준비하며 개인적 성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게 곧 서비스의 성장을 뜻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1. 미심쩍은 부분은 꼭 해결하고 지나갈 것
비디어스의 고질적인 고민은 시장규모였습니다.
3년 전 처음 지원사업을 준비할 때부터 IR을 준비하기 전까지 영상 제작 시장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습니다.
그냥 영상 시장 자체가 엄청 크다 보니 포션으로 설명해도 자료상으로는 충분히 그럴싸하게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비스에 속도가 붙고 실적이 생기기 시작하니 제일 유야무야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영상 제작 시장은 명확히 측정되기 어렵다는 점이 시장을 정의했을 때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닫힌 결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시나리오 기반으로 시장을 규정한 후 달성해나가면
오히려 전화위복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처음으로 아무 피드백이 없는 시장규모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2. 넓은 시야를 갖는 것과 큰 척하는 것의 차이
당장 미심쩍었던 부분들을 다 해결하고 나니 드디어 진짜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디어스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와 솔루션이 너무 작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규모를 키우기 위해 엮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엮어 5개년 로드맵을 만들었는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되어있었습니다.
다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역설적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것들을 다 부수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왜 비디어스를 만들었는지 다시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보통 문제는 거대하고 이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 솔루션이 존재하는데,
하나의 솔루션에 함몰된 나머지, 그 작은 솔루션을 문제 전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이를 인지하고서부터 억지로 엮을 것도 없이 우리가 정말 가야 할 방향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비디어스의 한계와 규모가 재정립되는 시간이었습니다.

3. 완전무결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초안은 거의 50장이 넘었습니다.
IR 자료는 보통 20-30장 내외를 추천하는데요.
왜 50장이 넘었을까요?
단편적으로 얘기하면 창작자들이 구인구직을 하는 데에 포트폴리오가 왜 필요한지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누군가가 없어도 되잖아요라고 말할 때를 대비해서요.
그런데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대답을 다 준비하려다 보니 결국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모든 게 다 말이 되고 납득이 되어야 하는 제 성향 때문에 주장을 진전시키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갑자기 성향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규정의 영역과 설득의 영역을 구분하는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무사히 30장 내외로 추려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줄이라는 피드백을 받았..)

4. 성장과 함께 철학도 같이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모든 스타트업 교과서에 나오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료를 만들었던 한 달 동안은 서비스는 물론이고 나 자신도 깨부수고 쌓아 올리고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저 L과 H가 없었더라면.. 스타트업.. 이겨낼 수 없는 강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곳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걸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에 가까운 철학이 없었더라면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혁신가의 마인드가 잘 와닿지 않는 사람이어서 철학이 없나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철학은 그런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믿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여러분 IR 자료를 꼭 만들어보세요.
한계에 부딪히고 해내가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빨리 직면할수록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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