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성공 공식으로부터 벗어나라

스타트업 씬에서 아이템을 찾으면 우선 PMF 검증을 하라고 한다.
왜?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트업은,
다시 말해 소상공인 내지 자영업자는 시장 규모를 보거나 PMF 찾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다.
투자를 받고 엑시트 할 계획이 아니라면 더더욱.
오히려 회사가 유지될 수 있는 만큼 돈을 벌어다 줄 골목상권 같은 BM을 찾아야 한다.

시장규모가 몇 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인 건 대자본에게나 유효고객이지,
마케팅 할 돈도 없어 하루에 몇만 원도 덜덜거리며 쓰는 소상공인에게는,
자본과 시간을 투입해도 얻을까 말까 한 청사진이 그리 유효하지 않다.
회사가 망하면 타겟하는 시장이 거대하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오히려 몇만 원씩 턱턱 쓰는 천명을 모으는 게 낫다.
이걸 3년 차에 깨달았다.

LAH를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무작정 스타트업에 관련된 것들을 찾아 읽었다.
책이나 아티클에서는 빠르게 테스트하고 빠르게 망하라고 하고, 시장 규모가 큰 아이템을 찾으라고 하고, 헝그리 정신으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안정적 운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인데 반신반의하며 하라는 것들을 최대한 해보려 했다.
왜 ‘해보려 했다’냐면 결국 완전히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타트업 아닌 스타트업 같은 느낌으로 회사를 꾸려갔지만 어쨌든 전형적이지 않은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지속됐다.한때는 하란 대로 하지 않아서 서비스가 지지부진한가 고민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외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심지어 외주를 관두고 헝그리 정신으로 전념할 건지 아니면 아예 외주업체가 될 건지 선택 회의를 하루 종일 한 날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우리의 고집이 조금 더 셌다.
서비스의 속도보다 회사가 안정적일 수 있는 방향을 택했고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요즘 느낀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했던 스타트업들 또는 디스콰이엇을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쯤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스타트업들을 종종 팔로업 한다.
정말 슬프게도 만료된 도메인이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사라진 업체들이 많다.
우리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을 때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고 있을 때,
PMF를 찾아 IR 미팅을 다니고 시드를 투자 받고 승승장구하던 업체들 대신 어떻게 우리가 살아남았을까.

정확히 말하면 살아남았다기보다 살아내고 있는 건데,
그게 가능했던 건 스타트업이란 단어가 가진 함정으로부터 빨리 벗어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DX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 PMF 검증만으로도 유저를 모아 매출로 이끌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너무 많은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고 더 이상 시장에 잘 맞아떨어지는 제품을 찾는 것만으로 매출을 담보할 수 없다.

헝그리 정신으로 유효한 아이템을 빨리 찾아내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보다,
잡초 정신으로 성장은 조금 더딜지라도 안전하게 끝까지 버텨내는 로우 리스크-로우 리턴의 전략이 오히려 유효했던 게 아닐까.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인 줄 알았던 서비스들도 하이 리턴이 맞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몰랐기 때문에 얽매여 있던 스타트업 성공 공식으로부터 벗어나니 해야 해보면 좋은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LAH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계속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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