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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외주

LAH 같이 작은 규모의 회사는, 자사 서비스가 자리 잡기까지 외주의 병행이 불가피합니다.
우리의 경우엔 이제 납품하면 끝나는 외주 일로부터는 거~~~의 벗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여러 개의 외주는 L이 감당해 주고 계시고,
모든 서류 업무는 A가 담당해 주고 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사무실에서 안락하게(?) 우리 회사 업무만 합니다.
간혹 외주를 위한 작업들도 하긴 하지만, 주 업무를 대체할 정도로 양이 많진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차치해두죠.

그랬던 제가 오랜만에 외주 업무를 했습니다.
꾸준히 개발을 맡아오던 곳에서 영상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개발에다 영상까지 프로젝트 전체의 규모가 커졌고, 입찰까지 해야 했습니다.
개발과 영상을 둘 다 할 수 있는 회사가 설마 있겠습니까? (있기야 하겠지만..^^)
무사히 우리가 입찰을 받아 왔습니다.

각기 다른 연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1분 내외의 영상 6개를 제작해야 했습니다.
기획안도 없는 상태에서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습니다.
거의 2년 만의 외주라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뭐든 기세 아니겠어요.
껌이지~ 마인드로 달렸습니다.
(울면서요.)

가장 막막했던 날은 자료들이 속속 도착하던 날이었습니다.
기획안의 토대가 될 자료들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해를 해야 기획을 할 수 있으니까요.
사과를 맛있게 먹는다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과가 뭔지 알아야 합니다.
사과는 껍질을 깎아 잘라먹거나, 통째로 베어 물 수 있는 과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사과를 스테이크처럼 썰어 먹고 있는 걸 만들게 될 수도 있죠.

막막했던 이유는 양이 너무 방대해서였습니다.
1분짜리로 압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요하다고 표시해 둔 것에서 더 중요해 보이는 것들을 선별했습니다.
이 중에서 꼭 중요한 것만 표시해달라고 재요청을 하면,
보통 돌아오는 답변은 ‘다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에요’입니다.
진짜 중요한 거면 수정 단계에서 추가 요청이 올 거라는 막가파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완성이 되니까요.

다음으론 기획을 합니다.
기획은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어떤 요소를 채택할지 정하는 일입니다.
영상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니 이 정도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또 사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꿀맛 같은 사과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과와 그 사과를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을 촬영할 수도 있겠고,
내레이션으로 ‘이 사과는 꿀맛입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사운드 효과로 ‘와그작’거리는 소리에다 다 먹은 사과 심 이미지를 두는 방법도 있겠어요.
또는 이말년 스타일로 사과 이미지에다 꿀맛이라는 텍스트를 써 붙여둘 수도 있죠.
어떤 분위기의 영상이냐에 따라 요소를 적절히 채택하여 레이어를 쌓아야 합니다.

ㅎㅎ앞서 든 예시 같은 내용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로 ‘이 연구가 얼마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인지 강조 바랍니다.’와 같은 요청사항이 주를 이룹니다.
연구.. 얼마나.. 사람.. 도움.. 뭐 하나 시각화하기 쉽지 않죠.
이 음악과, 이 내레이션과, 이 사운드와, 이 이미지와, 이 움직임이 붙으면, 이 느낌이 표현이 되겠지?
상상 속에서는 됐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까 모르겠는데?
두 물음표 사이에서 납품이 완료될 때까지 마음을 졸이는 게 영상 외주입니다.

아직 최종 납품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바탕 정리를 하고 나니 슬슬 회사 업무로 모드 전환을 할 수 있겠어요.
모쪼록 별다른 큰 수정 없이 마무리되길 기원해봅니다.
다음 라이브러리에서는 자사 서비스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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